그런데 이 ‘칠성판’을 죽은 자가 아닌 생사람에게 들이대 사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고문 장비로 사용된 경우가 그것입니다. 칠성판을 고문 장비로 고안해 이를 애용한(?) 사람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이었습니다. 피해자 두 명의 증언을 아래 소개합니다.
“... 가방을 갖고 다니면서 그 가방에 고문도구를 들고 다니는 건장한 사내(이근안)는 본인에게 ‘장의사 사업이 이제 제철을 만났다. 이재문(’남민전사건‘ 주범, 옥사했음)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속으로 부서져서 병사를 했다. 너도 각오해라. 지금은 네가 당하고 민주화 되면 내가 고문대 위에 서줄 테니까. 그 때 너가 복수를 해라.’ 이러한 참혹한 이야기를 하며 본인에 대한 동물적인 능욕을 가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본인은 알몸이 되고 알몸상태로 고문대(칠성판) 위에 묶여졌습니다... ” (김근태 전 의원 증언)
“지난 83년 간첩혐의로 붙잡힌 68살 함주명 씨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43일 동안 이근안으로부터 고문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고문 수법은 이근안이 직접 고안했다는 이른바 칠성판을 이용한 물고문, 전기고문이었습니다. 알몸상태에서 칠성판에 눕히고 7군데를 묶은 다음 이근안이 직접 올라타고 입에는 샤워 꼭지를 들이대고 양발에는 전기를 흘려보냈습니다.” (MBC 뉴스, 1999.10.29.)
두 사람의 증언에서 보듯이 칠성판은 고문할 대상자(피해자)를 눕히는 ‘고문대’로 사용하였습니다.(이 경우 장례용품용 칠성판처럼 별 일곱 개를 그리거나 새기지는 않았습니다.) 고문대 좌우 7군데 가죽끈을 부착해 두었는데, 이는 고문 대상자가 움직일 수 없도록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시신을 염할 때 7군데를 묶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이근안이 이 고문대의 이름을 하필 '칠성판'이라고 붙인 것은 왜일까요? 모르긴해도 이근안은 장례용품 '칠성판'에서 따왔다고 생각됩니다. 칠성판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에겐 그 이름만으로도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고, 실지로 그런 목적도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이근안과 그의 ‘고문기술자’ 친구들은 바로 이 칠성판에 무고한 민주인사들을 마치 동물처럼 묶어놓고는 갖은 고문을 자행하며 허위자백을 강요했던 것입니다.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고통을 절규할 때 이근안과 같은 고문 가해자들은 그 곁에서 낄낄대며 히히덕거렸을 지도 모릅니다.
몽둥이로 온몸을 때리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칠성판에 몸을 묶고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씌운 고춧가루를 탄 물을 쏟아 부어 숨을 못 쉬게 하는 물고문은 물론이요, 그래도 자백을 하지 않으면 새끼발가락에 전깃줄을 감아 전류를 흘려보내는 전기고문이 뒤따랐습니다.
고문피해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타계한 김근태 전 의원의 장례식이 어제(3일) 치러졌습니다. 당일 오전 8시 30분 명동성당에서 영결미사를 마친 고인의 유해는 청계천 전태일 동상 앞에서 20분간의 노제를 지낸 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물고문, 전기고문으로 심신이 깨어지고 망가진 김근태. 그럼에도 생전에 그는 밝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악마’와도 같았을 고문 가해자 이근안을 만나 용서해 주기도 했습니다. 보통사람으로선 쉽게 하기 어려운 결단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 이근안은 그와 달랐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이근안의 조문을 점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허사였습니다. 이근안은 5일장 내내 김 전 의원의 빈소를 찾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그가 김 전 의원에게 했다는 사죄는 결국 ‘거짓사죄’였음이 새삼 드러났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불로초를 찾아 조선 땅까지 사람을 보냈던 절대 권력자 진시황도 죽었고, 왕후장상에 억대 부자들도 모두 다 죽었습니다. 따라서 이근안과 그의 ‘고문기술자’ 친구들, 그들도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즉, 그들도 언젠가는 ‘칠성판을 지게’ 될 것입니다.
- ‘강압심문’이 고문 아닌가.
▲ 주먹으로 몇 대 쥐어박거나 유도(柔道)기술을 이용해 업어치기정도는 했다. 이것을 ‘고문’이라 한다면 변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혹행위는 없었다.
- ‘관절빼기’ ‘볼펜심 꽂기’ ‘통닭구이’ 등등 직접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고문기술들이 상당히 다양하다. 이런 기술들을 단 한 번도 동원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 그 기술들이 어떤 것인지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오랫동안 무도(武道)를 한 내가 그렇게 치사한 기술을 동원했다는 주장에 기가 막혔다. 내가 저지른 일은 당당히 “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기술들은 써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 이상의 고문기술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란 얘긴가.
▲ 그렇다. 일부 언론이 나를 ‘관절빼기의 명수’라고 부르던데 상식적으로 관절을 뽑으면 주위 인대가 늘어난다. 늘어난 인대는 관절을 다시 끼운다 해도 금방 회복되지 않아 상당기간 깁스 등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깁스하고 재판 받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과거 심문과정에서 난동을 부리는 피의자 몇 명을 완력으로 제압하다 팔이 빠지는 경우가 있긴 했다.
아마 이런 일화들 때문에 내게 ‘기술자’라는 호칭이 붙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피의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사고다.
- 고문피해자 상당수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가혹행위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통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 쫓기던 시절에는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조사만 받고 나오면 ‘고문당했다고’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들 나름의 ‘자기합리화’ 때문이라고 여겼다. 공안사건에 연루되는 인사들은 비밀결사 등 조직에 소속돼 있다. 조사를 받은 이들 상당수는 해당 조직 기밀을 당국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원래 조직으로 복귀한 뒤 대접이 예전 같겠는가. ‘배신자’ 소리 듣지 않으려면 비밀누설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대야 한다. 결국 ‘고문에 못 이겨서’라는 대답이 제일 타당하지 않겠나.
- 고문피해자로 나선 이들과 본인의 주장이 너무 상반된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 진실공방이 벌어진다 해도 내가 안 한 것은 안 한 거다. 화가 나면 쥐어박지 치사하게 뭘 접고, 꽂고 하겠나.